BEAUTY AND THE BEAST
"......."
"이봐. 계속 그렇게 창밖만 보고 있을 거야?"
"제가 무엇을 하든 당신이 참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제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 성에 갇힌 것이니 창밖을 보는 것 쯤은 제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나요?"
"정말이지 한 마디, 한 마디가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군. 신경 곤두서게 말이야."
"......."
여자는 눈을 살짝 찌푸리곤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여자가 성에 갇히게 된 이유를 말해보자.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여자의 아버지는 상인으로 물건을 전부 팔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집 가는 방향으로 나무가 낙뢰를 맞아 쓰러지는 바람에 길이 막혀버렸고 할 수 없이 상인은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들어갔다. 그 길로 들어가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지금은 분명... 여름일텐데?"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상인이 들어간 길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발이 함박눈처럼 우수수 쏟아내렸다. 상인은 신기함에 더욱 깊숙하게 들어갔다가 어느 한 거대한 성을 발견했다.
"이 성은 살면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이상하군."
성은 약간의 안개로 감싸져 웅장한 기운을 내뿜었다. 왠지 모를 신비함에 상인은 성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하얀 장미들이 심어져있는 장미정원을 발견했다.
"아차, 우리 딸에게 장미를 선물해주기로 했지.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군."
장미 한 송이 꺾어다가 돌아가야겠어. 상인은 조심스래 장미를 꺾었다. 그러자 갑자기 맹수의 포효같은 울음소리가 들리며 거대한 무언가가 상인을 덮쳤다.
"내 장미를 함부로 꺾다니! 각오할 준비는 되었겠지?!"
"헉!!"
거대한 무언가는 사자같은 생김새였다. 야수였다.
"내 성의 장미를 허락도 없이 꺾었으니 이제 넌 나에게 죽은 목숨이야."
"난 딸이 있는 몸이야!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그렇게 살고 싶으면 네 딸을 대신 데려와. 그러면 살려주지."
"뭐...?"
"싫어? 그럼 여기서 죽던지."
까득-
"알았어. 그렇게 하지."
'딸에게 장미를 선물해줘야 하는데. 난감하게 됐군. 게다가 딸을 데려오라니...'
"참고로 그냥 도망치면 직접 찾아간다? 내가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으니까."
"...알았어."
'제길... 더 난감하게 됐어.'
상인은 이를 갈며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딸에게 자초지명 설명했다.
"그렇군요."
"정말 미안하구나, 딸아. 그리고 이건 너에게 주려고 했던 장미인데 다 망가져버렸구나."
"괜찮습니다. 장미는 꽂아두세요. 그러니까. 제가 대신 가지 않으면 야수가 여기까지 찾아온다는 거죠?"
"그래. 여차하면 내가 갈테니..."
"전 정말 괜찮으니 아버지는 집에서 몸조리 잘하세요."
"정말로 괜찮겠니?"
"네, 괜찮아요. 열심히 생각해봐야죠."
그렇게 여자는 야수의 성안으로 들어가 갇혀버렸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아무것도 안 먹고 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을 거야?"
"장미 한 송이 꺾었다고 목숨 위협한 당신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니군요."
"장미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거라고. 함부로 만지거나 꺾는건 절대로 용납 못해. 이건 엄연한 네 아버지 잘못이라고."
"그 부분은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죠. 하지만 아버지의 목숨을 보장해주는 대신 저를 요구했다고 들었으니 제 마음대로 이곳에서 생활할 겁니다."
"하. 그래, 마음대로 하던가. 처음이나 지금이나 경계심이 많은건 여전하네."
여자는 매사에 신중하게 행동을 하기에 크게 무언가에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무사하게 있는 것도 그 때문일 터. 야수가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 여자는 감옥 창살 안으로 넣어진 식어가는 음식을 보며 얼굴을 무릎 사이로 파묻었다.
탕탕탕-
".....?"
누군가가 창살을 두드리자 여자는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창살을 두드린 사람은, 아니 두드린 것은 촛대였다.
"괜찮아요?"
"...촛대가 말을 해?"
"하하, 처음 보는 신선한 반응이네요. 뭐...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애초에 없기도 하지만요."
촛대는 말하며 창살로 가까이 다가갔다.
"제가 아가씨를 풀어드릴게요."
"????"
'조금 당황스럽군. 이 촛대는 사람인 건가?'
"말하는 촛대는 처음 보니 그런 표정도 이해가 가요. 전 원래 사람이었으니 이런 모습이더라고 편하게 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 이었다고요?"
"맞아요. 사실 아가씨가 칭하시는 야수도 인간이었어요. 저희는 저주로 주인님은 야수로, 저는 촛대가 되었어요. 물론 저랑 주인님만 이 성에 사는 것은 아니랍니다."
"주인님이라니... 예상은 했지만 이 성은 그 야수의 소유물인겁니까?"
"맞아요. 자세한 것은 천천히 얘기해요."
촛대는 창살의 잠금장치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문을 열었다.
달칵! 끼이익-
"풀렸다! 이제 나오셔도 되요. 촛대의 손이다보니 오래 걸렸네요."
"저를 이렇게 풀어주셔도 되는 겁니까?"
"괜찮아요. 아가씨의 눈에는 주인님이 인정머리 없는 야수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다정하시답니다."
'전혀 그렇게 안보이던데.'
야수의 이미지가 조금 깨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으로 돌아가는 방법. 그러니까 저주를 풀기 위해선 저의 주인님께서 진실한 사랑을 느끼시고 상대방 역시 사랑을 느끼면 풀립니다."
"진정한 사랑이라... 그런 말을 하시는 것을 보니 저에게 사랑하는 역할을 하라는 거군요."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아가씨 같은 분이라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하네요."
"저의 어떤 면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렸습니다. 저는 사랑같은 건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쉽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어어... 그러면 이대로 가시게요?"
"제가 여기서 도망친다면 야수는 분명 절 따라와서 다시 목숨을 위협하겠죠. 걱정 마십시오. 저는 제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촛대는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따라오세요. 집으로 보내드릴게요. 주인님은 제가 잘 타일러볼게요."
"?!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절 죽이시진 않을 거예요. 기껏해야 던져지는 것 정도...?"
"역시 안되겠군요. 저 때문에 엄한 사람이 다치는 것은 보기 싫습니다."
"하지만 아가씨, 아가씨께서는 사랑을 못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전 촛대니까 던져져도 멀쩡해요."
"아니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용납 못합니다."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말씀하신다면야... 말릴 수는 없겠네요. 하지만 어떻게 하시게요?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서로간의 진실한 사랑이에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사랑은 노력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랍니다, 아가씨."
"......."
맞는 말이다. 야수를 온순하게 바꾸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사랑은 거짓으로 만들어질 수 없으니까. 그것도 진실된 것이라면 더더욱.
"성으로 오신 뒤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죠? 식사하세요. 부디 거절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겠습니다."
'결국 이 일은 나밖에 할 수 없는 건가.'
여자는 할 수 없이 촛대의 뒤를 따라갔다. 식당으로 가니 온갖 물건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식사를 차리는 진풍경이 보였다. 찻잔, 주전자, 먼지털이, 옷걸이 등등. 사람이었을 물건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정말로 신기한 것 투성이로군.'
덜컹-
"뭐야? 누가 쟤 풀어줬어?!"
"접니다, 주인님."
"뭐??"
"주인님의 저주... 아니, 모두의 저주를 풀기 위해 제가 아가씨를 설득했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풀썩-
야수는 화가 났지만 저주라는 소리에 진이 빠져 크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두 번째로 뵙네요, 아가씨. 성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 모습을 봤어요. 많이 출출하실텐데 자리에 앉으세요. 곧 식사를 차려드릴테니. 호호호."
주전자가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아름다우시네요. 피부가 이리도 곱다니..."
날아다니는 먼지털이가 말하며 탁자를 청소한다. 다른 먼지털이들은 냅킨을 펼쳐 여자의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모두가 휘황찬란하게 음식들을 내놓고 식기구를 놓았다. 무엇보다도 정말 화려한 모양새였다.
'와...'
여자는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해한다. 평소에 마을 사람들도 좀처럼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야수는 저도 모르게 흐뭇해한다.
'감탄해하는 표정은 처음 보네. 표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조금... 귀여운 거 같기도.
호화스러운 식사가 끝난 이후로도 여자와 야수는 자주 얘기를 나눴다. 먼저 말을 거는 쪽은 거의 야수지만 가끔 여자가 다가가기도 한다. 그 덕분인지 둘의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눈덩이를 만들어서 눈싸움을 한다거나, 눈사람을 만든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그런 사소한 일상을 지내고 있지만 둘은 분명히 가까워졌다. 그렇게 서로간의 신뢰가 한겹씩 쌓여갈 즈음, 사건이 벌어졌다. 여자는 성 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구경을 했다. 그러다 외진 방을 발견하고 호기심으로 들어갔다.
"왜 여기만 따로 떨어져 있지?"
손잡이를 당기자 굉음소리가 나며 열렸다. 그녀는 천천히 들어가며 안을 둘러보는데 이상하리만치 방이 허름했다.
"어째서 이 방만 허름한 거지? 여기만 보면 폐허로 착각할 것 같군."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방이다.
"저게 뭐지?"
여자는 발코니에 무언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찬란한 달빛이 비추는 아래 둥근 유리덮개로 씌워진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있었다.
"붉은 장미? 이런건 정원에도 없었는데..."
여자는 의아해한다. 장미를 자세히 보다가 왠지 모를 신비함에 여자는 장미를 만져보려고 손을 가져다댄다. 그러자
"손 대지마!!!"
흠칫
"....!!!"
야수가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여자를 장미에게서 떨어트렸다.
"여기는 왜 들어온 거야?!"
오랜만에 보는 야수의 화내는 모습. 여자는 눈을 조금 동그랗게 뜨며 놀랐지만 침착하게 대답한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렀을 뿐입니다."
"여기는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돼! 절대로!"
'답지않게 많이 흥분하는군. 그만큼 저 장미가 중요하단 뜻이겠지.'
"하아... 겁줘서 미안해. 하지만 여긴 절대로 들어와선 안 돼. 이 방은 잊어. 붉은 장미도 잊어.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마."
그렇게 말하곤 야수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버렸다.
똑똑똑-
"음?"
"저예요, 아가씨. 촛대에요."
"무슨 일이십니까?"
"이 방을 발견하시고 말았네요... 이 방은 외부인은 출입금지인 방이에요."
'그러면 출입금지라고 경고문이라도 적어놓을 것이지.'
"솔직하게 말해드릴게요. 사실 저 장미는 우리들의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말 그대로에요. 주인님을 야수로 만들고 저희들을 물건으로 변하게 만든 저주를 건 사람이 장미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질 때마다 저희 목숨이 하나하나 없어지고 있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무리도 아니죠. 전부 말해드릴게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 장미가 져버리면 주인님께선 영원히 야수로, 저희들은 영원히 진짜 물건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기 전에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될 상대를 찾고 있었던 거죠."
"저를 처음 봤을 때 하셨던 말이군요."
"네, 맞아요. 이제 전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민감한 부분이었을 텐데,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는 정말로 착하고 마음씨가 따뜻하시네요.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촛대는 꾸벅 인사하며 나갔다. 여자는 몸을 추스르고 장미를 한 번 빤히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고.
"사랑이 싹트는 순간은 뭐니뭐니해도 무도회죠!"
주전자가 말했다.
"저도 찬성이에요. 얼른 저주를 푸시고 싶지 않나요, 주인님?"
먼지털이가 말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이런 흉악한 야수의 모습인데, 걔가 받아주겠어?"
"그녀를 믿으세요, 주인님."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야수에게 꽂혔다.
"아, 알았어. 그럼 걔 좀 불러내줘."
"어머, 주인님. 자고로 신사분께서는 레이디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하아..."
"자, 얼른 일어나세요, 주인님. 무도회에 걸맞는 드레스코드를 입으셔야죠!"
"알았으니까 보채지 마."
하인들이 일제히 야수를 꾸며줬다. 처음에는 조금 우스꽝스러웠지만 곧 제대로 옷매무새를 갖췄다. 한껏 꾸민 야수는 성의 로비로 나와 여자를 기다렸다.
"아가씨께서 준비가 다 되셨습니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야수는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방 안에서 나온 여자는 아름다운 노란색 드레스를 입었다. 그 모습이 마치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인 것만 같았다. 여자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아름다웠다. 야수는 동공이 커지며 멍하니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를 쳐다봤다. 물건들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껏 꾸미셨군요."
"너야말로."
"그럼, 춤이나 출까요?"
"물론."
야수가 여자를 리드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우와아...!! 진짜 아름다워요, 엄마!"
찻잔은 감탄해하며 주전자에게 말한다.
"후훗, 그렇지?"
"저 두분에게 어울리는 말이 생각났어요! 그러니까... 미녀와 야수!"
"어머, 얘가? 하지만 엄마도 동감이구나."
주전자는 웃었다. 무도회를 좀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해 주전자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Tale as old as time
시간속에 흘러온 아주 오래된 이야기
True as it can be
더할 수 없을 만큼 진실한 이야기
Barely even friends, then somebody hends Unexpectedly
친구라 할 수도 없던 그들 사이, 그러다 누군가 돌연히 마음을 풀었죠
Just a little change Small, to say the least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Both a little scared Neither one prepared Beauty and the Beast
둘다 조금은 겁이 났고 누구도 준비하지 않았던 미녀와 야수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Ever just the same, ever a surprise
언제나 같은 느낌, 언제나 다가오는 놀라옴
Ever as before, ever just as sure As the sun will arise
예전처럼 여전하면서 언제나 태양이 떠오르는 것 처럼 확실한 사랑
Tale as old as time
시간 속에 흘러온 오래된 이야지
Tune as old as song
노래속에 녹아온 선율 같은 사랑
Bittersweet and strange Finding you can change
쓰면서도 달콤하고 신비로운 사랑 그대가 변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Learning you were wrong
그대가 과거에 잘못했음을 깨달을 수 있고
Certain as the sun Rising in the east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햇살처럼 뚜렷한
Tale as old as time Song as old as rhyme
시간속에 흘러온 오래된 이야기, 시처럼 오래된 노래
Beauty and the beast
미녀와 야수의 사랑 이야기
노래가 끝나자 둘의 춤도 끝나고 동시에 무도회도 막을 내렸다. 둘의 사이는 더 가까워지고 이내 사랑으로 싹이 틔워졌다. 그 덕분에 마지막 장미 꽃잎이 떨어지기 직전, 그들의 저주가 풀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야수 역시 사람으로 돌아오고 둘은 행복하게 춤을 추었다.